57년 만에 밝혀진 최초의 독도노래 '독도의 섬지기'

  发布시간:2024-03-29 19:42:18   작성자:玩站小弟   我要评论
‘독도의 섬지기’ 악보 photo 가수 서희'한국 최초의 독도노래'가 1967년 발매된 '독도의 섬지기'(신지현 노래, 김문응 작사, 정주희 작곡)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

57년 만에 밝혀진 최초의 독도노래 '독도의 섬지기'

‘독도의 섬지기’ 악보 photo 가수 서희


'한국 최초의 독도노래'가 1967년 발매된 '독도의 섬지기'(신지현 노래, 김문응 작사, 정주희 작곡)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학계에서 1968년 나온 '독도 에레지'(박진하 노래, 황우루 작사, 심성락 작곡)가 한국 최초의 독도노래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런데 광복 이후 나온 모든 독도 관련 노래를 찾아내 분류하는 작업을 거친 끝에 최초의 독도노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독도 가수'로 알려진 서희(본명 서선택)씨. 서씨는 최근 경일대에 제출한 '대한민국 독도노래 50년사 연구' 박사학위 논문에 이러한 사실과 함께 '독도의 섬지기'라는 노래의 탄생 비화를 담았다.

다른 노래 LP음반에 수록된 것 찾아내

경상북도 독도재단 홍보대사이기도 한 서씨가 독도노래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오래됐다. 1990년부터 '역사 노래 부르기 대회'를 전국에서 진행하다가 독도노래가 노래의 암시적 기능에 의해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절감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예명도 자신의 32대 할아버지로 고려시대 거란족으로부터 강동육주를 되찾아온 서희 장군으로 바꿨고 본격적으로 독도 등 영토수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서씨는 독도 홍보가 한국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도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2006년부터 '신 독도는 우리 땅'을 시작으로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4개국 언어로 독도노래를 불러왔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 23회에 걸쳐 초청돼 '대한민국 영토 독도'를 홍보하기도 했다. 서씨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는 다른 독도노래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에서부터 이번 박사학위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독도의 섬지기'가 발견된 196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창작 독도노래는 모두 193곡이라고 한다. 그는 1967년 이전에도 독도 관련 노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국립예술자료원'을 통해서 음향으로 기록된 해인 1900년부터 최초의 독도노래로 확인된 '독도의 섬지기'가 등록된 1967년까지의 자료를 모두 검색했으나 독도 관련 노래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독도노래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65년 한·일 간 어업회의 11차 회의를 통하여 어업협정이 체결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중학교 지도책에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에 초창기만 하더라도 물리적 대응으로 맞서왔지만 점차 성숙된 시민의식이 발전하며 문화적 대응인 독도노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럼에도 1967년부터 1976년까지는 독도노래가 '독도의 섬지기'와' 독도 에레지' 두 곡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독도 에레지'보다 한 해 먼저 나온 '독도의 섬지기'가 알려지지 않았던 원인은 노래 제작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김향미의 '칠백 리 고향 길' LP음반의 A면 6번 트랙에 '독도의 섬지기'가 실려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그 LP음반이 1967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최초 독도노래가 '독도의 섬지기'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여러 가수들이 하나의 음반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함께 노래를 담았는데 해당 LP A면 6번 트랙에 '독도의 섬지기'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는 '독도의 섬지기' 탄생 비화를 알아보기 위해 이 노래 작사가와 작곡가를 수소문했지만 작사자 김문응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 작곡자 정주희씨는 생존해 있었다. 다만 정씨는 '독도의 섬지기' 작사·작곡을 모두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에 따르면, '방랑시인 김삿갓'의 작사자로 유명한 김문응씨가 자신의 스승인데 "'독도의 섬지기' 노래를 좀 더 알리려는 방안으로 김문응씨와 합의해서 작사자를 김문응으로 등록했다"는 것이다.

"최초 독도 주민 최종덕 기리는 노래"

정씨에 따르면 '독도의 섬지기'가 나온 배경은 최초의 독도 거주민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기 위해 홀로 독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는 잘 몰라도 대단하고 많이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노래를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도의 섬지기'의 실존 인물은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씨다. 울릉도에 소재한 '독도박물관'의 최종덕 자료를 보면 최씨는 1963년부터 약 3개월 동안 처음으로 독도에서 어업을 시작해 1965년부터 독도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물골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돼 있다. 1967년에는 서도 현 주민숙소 위치에 토담집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독도를 외롭게 지킨 최씨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인 '독도의 섬지기'를 시작으로 1982년에는 독도노래의 대표작인 '독도는 우리 땅'(정광태 노래, 박인호 작사·작곡)이 만들어진다. 서희씨가 이번 논문 작성을 위해 작곡자 박씨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이 노래는 당시 KBS TV 인기 개그 프로그램 '유머 1번지'에서 일본의 주장을 풍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박인호씨는 "평소 국토 사랑이 나라 사랑의 기본이 된다는 생각에 일본 총리가 의회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발언한 신문 기사를 읽고 분노를 느껴 내가 참여하고 있던 KBS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독도가 한국 땅임을 온 국민이 쉽게 알 수 있게 하려고 백과사전을 참고하여 가사와 곡을 만들어 개그맨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방송하였다"라고 전했다.

해당 노래가 유명해지면서 2006년에는 '독도는 한국 땅'(소명 노래, 정헌송 작사, 정의송 작곡)이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소명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제목은 '독도는 우리 땅'에서 '우리 땅'의 의미가 부르는 사람의 국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예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제목을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독도 에레지' 가사

외로운 섬이라서 독도라더냐/ 그 이름 독도라서 외로운 섬이 되었지/ 쓸쓸히 홀로 솟는 돌 더미 섬아/ 무심한 갈매기 떼 슬피 울고/ 아~ 파도 소리 서러워라 독도 에레지/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차가워도/ 꿋꿋한 얼을 담고/ 천만년을 참고 살았지/ 말 못할 이 사연을 그 누가 알아줄까/ 새빨간 저녁노을 불타오를 때/ 아~ 뱃고동 소리/ 서러워라 독도 에레지

'독도의 섬지기' 가사

등댓불이 깜빡이는 외로운 섬에/ 앞바다를 지켜보는 독도의 섬지기/ 집 없는 바위섬에 육지를 바라다보네/ 그 얼마나 가고 싶나 그리운 고향 집/ 아~아~ 외로운 섬 독도의 섬지기/ 찾아오는 사람 없는 외로운 섬에/ 고향 편지 기다리는 독도의 섬지기/ 님 없는 잠자리에 꿈길도 어지러우네/ 그 얼마나 보고 싶나 그리운 그 가족/ 아~아~ 외로운 섬 독도의 섬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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